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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코스

경주한옥민박 다루 - 석굴암 통일신라시대에 경주 토함산(吐含山)에 세워진 한국의 대표적인 석굴사찰이다. 신라인들의 신앙과 염원, 뛰어난 건축미, 성숙한 조각기법 등을 보여주는 역사 유적으로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일주문 현판에는 토함산석굴암 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산책하듯 아이들도 힘들지 않고 걷기가 좋습니다. '200대 명산, 토함산(745m)' 하산길에 만나는 '석굴암(石窟庵)', 세계 유산 석굴암 석굴, 국보 제24호 / 통일신라시대 751년(경덕왕 10)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 경덕왕은 신라 중기의 임금으로.. 더보기
경주한옥민박 다루 - 경주양동마을 경주 양동마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관람료 : 성인-4.000원, 청소년,군인-2,000원,어린이-1,500원 해설사 안내시간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안강에서 형산강 줄기를 따라 포항 쪽으로 가는 도로에서 약 2킬로 정도 들어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은 월성손씨(月城孫氏)와 여강이씨(驪江李氏)의 양대 문벌로 이어 내려온 동족마을이다. 지리적으로 형산강의 풍부와 물을 바탕으로 넓은 안강평야가 펼쳐져 있다. 풍수지리상 재물 복이 많은 지형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마을 초입부터 제법 큰 양반 가옥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다. 이들 기와집들은 종가일수록 높고 넓은 산등성이 터에 양반들의 법도에 따라 집을 배열하고 있으며 오랜 역사를 지닌 큰 집들을 잘 보존하고 있다. 집들의 기본구조는 대개 경상도 지방에.. 더보기
경주한옥민박 다루 - 콩이랑 식사는 인원수 대로 현수막이있습니다..헉..^^ 생생정보통에 소개된 집이구요 주차장 넓고 넓습니다. 평일 점심인데도 대기가 있었어요. 밑반찬들이 아주 깔끔하고 어느 하나 못 먹겠다 하는게 없었습니다. 가격도 착하고 다만, 순두부 찌개는 김치찌개 맛 ? 해물순두부아니구요 김치찌개에 순두부 넣은것 같아요 청국장순두부는 된장찌개에 순두부 넣은것 같아요..묘한^^ 맛평가는 콩이랑 검색하시면 많은 분들이 평가해 놓았으니 패스.. 주위에 음식점으로 떡갈비점문점 [고색창연] 모든 연령 추천 칼국수 돈까스 집 [해솔방] -엄마,아빠,아이,커플 추천 칼국수 바지락칼국수 집 [궁림바지락칼국수 & 보쌈] - 가족,커플,친구 추천 다음에 간단 설명올려 놓겠습니다. 더보기
경주한옥민박 다루 - 경주 금장대 경주 금장대를 소개합니다. 금장대는 봉황대와 함께 경주의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이곳에 있던 절 혹은 건물의 이름인 “금장”을 따서 금장대(金藏臺)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곳은 그 경치가 매우 빼어나 경주의 하늘을 지나가는 기러기들이 쉬었다 간다고 하여 경주의 여덟 가지 기이한 현상(三奇八怪) 가운데 하나인 금장낙안(金藏落雁)이라 불리워지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는 신라시대 자비왕 때 을화라는 기생이 왕과 연희를 즐기는 도중 실수로 빠져 죽었다는 설을 비롯해 몇 가지 설화가 전해 오는 곳입니다. 그리고 금장대의 아래에 만들어진 예기청소(藝妓淸沼)는 형산강의 본류인 서천과 북천이 만들어낸 것으로, 김동리의 단편소설인 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러한 금장대는 빼어난 경치만 있.. 더보기
경주한옥민박 다루 - 김유신장군묘 경주 벗꽃으로 유명하죠 벗꽃 터널길 따라 올라가면 주차장이 나옵니다. 김유신 장군묘를 소개합니다. 매표소를 지나 들어가면 나옵니다. 경주 송화산 동쪽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 장군 김유신의 무덤입니다. 김유신(595∼673)은 삼국통일에 중심 역할을 한 사람으로, 김춘추(후에 태종무열왕)와 혈연관계를 맺으며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였고, 여러 전투와 내란에서 큰 공을 세웠습니다. 660년에 귀족회의의 우두머리인 상대등이 되어 백제를 멸망시켰으며, 668년에는 신라군의 총사령관인 대총관(大摠管)이 되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의 침략을 막아 신라 삼국통일의 일등공신이 되었습니다. 무덤은 지름이 30m에 달하는 커다란 규모이며, 봉분은 둥근 모양이다. 봉분 아래에는 둘레돌을 배치하고 그 주위에는 돌난간을 둘.. 더보기
경주한옥민박 다루 - 경주 기림사 경주시내에서 감포로 가는 자동찻길, 추령고개를 넘어 협곡을 가로지르는 멋진 도로를 지나면 조용한 사찰이 나온다. 그 사찰은 무려 1500년 전 선덕여왕 때 천축국 승려 광유가 창건하고 원효대사가 확장한 신라 사찰 기림사입니다. 기림사는 그 역사만큼이나 많은 설화를 가지고 있다. 먼저 이야기한 창건에 대한 이야기도 설화이며 혹자는 신라 최초의 사찰이라 추정하기도 한다. 또한 다섯 가지의 맛을 내는 약수가 나온다는 오정수 설화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佛國寺)의 말사입니다. 643년(선덕여왕 12)천축국(天竺國)의 승려 광유(光有)가 창건하여 임정사(林井寺)라 부르던 것을, 뒤에 원효(元曉)가 중창하여 머물면서 기림사로 개칭하였다. 기림사란 부처님 생존 때에 세워.. 더보기
경주한옥민박 다루 - 첨성대 국보 제 31호 첨성대(瞻星臺)는 동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져 있있며, 신라 선덕여왕(632-647, 신라 27대 왕)때 건립되었다고 삼국유사에 전해진다. 별을 관측하는 천문대에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라는 주장, 사방 어디에서 보나 똑같은 모습 그 자체로 해시계의역할과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을 본떠 만든 건축물 등 여러 주장들이 있다. 이용시간 - 하절기 : 09:00~22:00동절기 : 09:00~21:00 입장료 - 2016년1월1일 부터 무료 주차료 대릉원 주차시(소형 2000원 / 대형 4000원), 기타 주변에 주차가능[최근 갓길주차가능 30분에 500원] 경주문화 관광 "첨성대 자세한 설명 링크" 계림의 국토 박물관 순례 "첨성대 구조 자세한 설명 링크" 더보기
경주한옥민박 다루 - 경주 동궁과 월지(舊 임해전지, 안압지) 신라의 태자가 머물렀던 곳이다. 특히 임해전(臨海殿)은 군신들이 연회나 회의를 하거나 귀빈을 접대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674년(문무왕 14)에 건립하였다고 하지만,『동경잡기(東京雜記)』에는 안압지가 건립된 시기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뒤에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679년에 궁궐을 매우 화려하게 고쳤다고 하였고, 804년(애장왕 5), 847년(문성왕 9), 867년(경문왕 7)에는 임해전을 중수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697년(효소왕 6) 9월과 769년(혜공왕 5) 3월, 860년(헌안왕 4) 9월, 881년(헌강왕 7) 3월에는 군신들이 연회를 가졌다고 하였으며, 931년에는 신라의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초청하여 주연(酒宴)을 베풀고 위급.. 더보기
경주한옥민박 다루 - 경주국립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國立慶州博物館) Gyeongju National Museum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국립박물관으로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를 비롯한 신라시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1913년 경주고적보존회(慶州古蹟保存會)가 결성되고, 1915년 옛 객사(客舍) 건물을 이용하여 신라 유물을 수집·전시하였다. 1929년 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慶州分館)이 되었으며, 1945년 8·15광복과 함께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출범하였다. 1975년 7월 2일 인왕동 신박물관으로 이전하였으며 같은 해 8월 20일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승격되었다. 1981년 제2별관을 신축하였으며 1994년 경주박물관대학을 개설하였다. 2002년에 미술관을, 2005년에 어린이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조직은 학예연구실과 기획운영과로 운영되며.. 더보기
경주한옥민박 다루 - 분황사 경주분황사를 소개합니다. 분황사 석탑은 현재 남아 있는 신라시대의 탑 중 가장 오래 된 것입니다 멀리서 얼핏 보면 벽돌로 차곡차곡 쌓은 건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벽돌이 아니고 전부 돌로 되어 있습니다. 돌을 일일이 벽돌처럼 작게 깍아서 쌓았다니 그 정성이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벽돌로 쌓은 탑을 전탑(塼塔)이라고 하는데 벽돌탑을 모방해서 벽돌모양의 돌로 쌓은 석탑이라 해서 모전석탑(模塼石塔)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합니다. 아마 벽돌로 쌓았으면 지금까지 남아있지 않겠죠 원래 이 탑은 7층이나 9층이었고 임진왜란 때쯤 무너져서 크게 훼손되었을 거라고 추청합니다. 무너진 탑을 3층 까지만 일본인들이 일제강점기때 복구를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남아 있는 것은 돌로 쌓았기 때문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