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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한옥민박 다루 - 오릉 『경주 오릉 (慶州 五陵)』 경상북도 경주시 서북쪽 경주 분지 남쪽 끝에 있는 신라 초기 박씨 왕들의 무덤 경주 오릉은 사적 제172호. 봉분 높이 10m 내외, 지름 20m 내외이다. 신라 초기의 왕릉으로 시조(始祖) 박혁거세(朴赫居世)와 알영부인(閼英夫人), 제2대 남해왕(南解王), 제3대 유리왕(儒理王), 제5대 파사왕(婆娑王) 등 5명의 분묘라 전해진다. ​오릉 동쪽에는 박혁거세의 위패를 모신 「숭덕전」이 있고, 그 뒤에는 알영이 탄생한 알영정이 있습니다. 일명 사릉(蛇陵)이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명칭은 박혁거세가 승하 후 7일 만에 그 유체(遺體)가 다섯 개로 되어 땅에 떨어졌으므로 이를 합장하려 하자 큰 뱀이 나와 방해하므로 그대로 다섯 군데에다 매장하였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연유되었다. .. 더보기
경주한옥민박 다루- 포석정지(포석정) 우리나라 국보 1호는 숭례문, 보물 1호는 흥인지문. 그러면 사적1호는? 국보 1호나 보물1호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사적 1호에 와서는 누구나 대답이 막힐 듯 한데 역사상 중대한 시설이나 그 자취를 이르는 사적(史蹟) 1호는 바로 경주 남산자락에 위치한 포석정지(鮑石亭址)입니다. 경주 톨게이트를 통해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오릉네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삼릉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에 포석정지가 나타나는데 제법 너른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면 바로 포석정지 입구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포석정지 바로 옆으로는 남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도 자리잡고 있어서 등산객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 포석정은 의외로 그 규모가 별로 크지 않습니다. 양 옆에 서 있는 고목들이 훨씬 더 웅장해 보일 정도로 조촐한 규모입니다. 현재 정자는 남.. 더보기
경주한옥민박다루-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 경북산림환경연구원을 소개합니다. 신라천년의 향기가 숨쉬고 있는 경주 남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우리 연구원은기후변화에 대응한 산림환경조사, 산림병해충의 친환경 방제, 유망 임산물의 소득화 연구, 산림의 효율적인 경영과 보호를 위한 임도 및 사방사업을 수행하는 산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또한 야생화원, 무궁화동산, 산림전시실, 습지생태원 등 오랜 세월 가꾸어 온 아름다운 산림자원을 바탕으로, 해마다 우리 연구원을 찾아오는 30만명 가량의 관람객에게 산림문화를 즐길 수 있는 쉼터를 제공하고 있으며,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숲해설 프로그램과 유아숲체험원도 성황리에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사진 출사지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고 가족사진,웨딩촬영,아이들 성장사진등... 경주사람들의 가족소풍 코스이기도 합.. 더보기
경주한옥민박다루-불국사 불국사는 경상 북도 경주시 동쪽 토함산에 있는 절입니다. 고려 시대에 만든 역사책《삼국유사》에 따르면 이 절은 신라 경덕왕 때인 751년에 김대성이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불국사의 내력을 적은 《불국사 역대 고금 창기》에 따르면 이 절은 528년에 세웠다고 전합니다. 또, 574년에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 부인이 절의 규모를 크게 늘렸고, 문무왕 때인 670년에 무설전을 새로 지었으며, 751년에 낡고 규모가 작았던 이 절을 당시의 재상 김대성이 크게 다시 지었다고 전합니다. 이러한 자료를 참고로 할 때, 불국사는 처음에 작은 규모로 세워졌던 것을 김대성이 크게 늘려 지은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고쳐 지으면서 규모가 2,000여 칸으로 커졌으나, 임진왜란 때인 1593년에 왜군에 의.. 더보기
경주한옥민박다루- 무열왕릉 경주 태종무열왕릉을 소개합니다. 저희 다루 인근에 위치한 신라 제29대 태종 무열왕 김춘추(재위기간 654-661)의 무덤입니다.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룩하려고 나당연합군을 결성해 백제를 흡수하고 통일의 기반을 닦았으나 통일을 완수하지는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경주문화 관광 "태종무열왕릉 자세한 설명 링크" 계림의 국토 박물관 순례 "태종무열왕릉 자세한 설명 링크" 이 비석(碑石)은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원년(元年)(661)에 무열왕(武烈王)의 위대한업적을 길이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인데 비신(碑身)은 없어지고 지금은 비(碑)의 대석(臺石) 이었던 귀부(龜趺)와 비신(碑身) 위에 얹혔던 이수 만이 남아 있습니다. 목을 길게 쳐들고 힘차게 뒷발로 땅을 밀며 전진하는 거북의 모습에서 신라통..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