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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한옥민박 다루 - 감은사지와 이견대

경주 감은사지  (사적 제 31호)

감은사()는 신라 제30대 문무대왕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성취하고 난 후,

부처님의 힘으로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우다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자

아들인 신문왕이 그 뜻을 좇아

즉위한 지 2년 되던 해인 682년에 완성한

신라시대의 사찰이었다.

문무대왕은 죽기 전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낼 것을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한 곳이 바로

 대왕암이며 부왕의 은혜에 감사하여

사찰을 완성하고 이름을 감은사라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현재의 모습은 1979년부터 2년에 걸쳐

전면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얻어진 자료를 통해

창건 당시의 건물 기초대로 노출 정비한 것이며,

아울러 금당의 지하에는

바다용이 된 문무대왕의 휴식을 위한

상징적인 공간을 마련한 특수 구조와 동쪽으로

통로를 만들었다고 하는 흔적도 밝혀 놓은 것이다.

우뚝 솟은 두 삼층석탑은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한 통일신라 초기의 석탑으로서

수십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만들어 조립식으로 세운 것으로

전체 높이 13.4m에 이르는 신라 삼층석탑 중 최대의 것이다.

 

 

경주 이견대

경주의 일출 명소를 꼽으라면 경주 이견대를 떠올리게 됩니다

경주 감포읍 대본리 문무왕 무덤인 대왕암이 내려다 보이는

해안가 언덕 위에는 정자 한 채가 있습니다.

이 건물은 신라 신문왕이 감포 앞바다에 있는 부왕의 무덤,

대왕암을 망배하기 위해서 지은 건물, 이견대입니다. 

목조 건물이라서 수백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무너져서 한동안 건물터만 희미하게 남아있게 되었지요.

최근에 고증을 통하여 터의 위치를 확인하고 당시 건물양식으로 새로 복원한게 지금 보는 건물입니다.

경주 이견대(Igyondae Pavilion)는 삼국유사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요.

신문왕은 죽은 문무왕의 화신이라는 '용'을 이견대에서 보았다고 합니다.

이 곳에서 <만파식적 설화>도 연결이 되기에 더 유서 깊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감은사지 금당 뜰 아래에 동쪽으로 구멍을 두었는데,

이 구멍은 신문왕이 용이 된 아버지가 법당 안으로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죠.

후에 용이 나타난 곳을 이견대(Igyondae Pavilion)라고 불렀다고 하더군요.

경주여행을 온 분들에게 감은사지와 문무대왕암은 꽤 알려진 여행코스지만,

이견대는 상대적으로 놓치기 쉬운 여행코스인 게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런 정가가 있는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릅니다.

간을 681년으로 돌아가면, 신문왕은 호국용이 된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감은사를 창건하게 됩니다.

그다음 해에는 감은사 앞바다에 작은 산이 떠내려오고,

이 소식을 접한 신문왕은 이견대로 행차하여 그 산을 바라봤다고 합니다.

며칠 뒤에는 직접 그 산에 올라서 용을 만나게 되고, 

그 용으로부터 검은 옥대를 받았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죠. 옥대를 받자마자

신문왕은 신하에게 명하여 산 위에 있던 대나무를 베도록 하였는데,

그 대나무로 만든 피리가 바로 세상을 구하고 평화롭게 한다는 <만파식적>입니다.

바로 신라의 보물이 됩니다.

주변에 가볼만한 곳은 문무대왕릉,

기림사,골굴사,읍천항,주상절리가 있습니다. 

 

 

경주 감은사지와 이견대  [출처:유튜브]태믹스의 역사지식문화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