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양동마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관람료 : 성인-4.000원, 청소년,군인-2,000원,어린이-1,500원
해설사 안내시간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안강에서 형산강 줄기를 따라 포항 쪽으로 가는 도로에서
약 2킬로 정도 들어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은 월성손씨(月城孫氏)와 여강이씨(驪江李氏)의 양대 문벌로 이어 내려온 동족마을이다.
지리적으로 형산강의 풍부와 물을 바탕으로 넓은 안강평야가 펼쳐져 있다.
풍수지리상 재물 복이 많은 지형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마을 초입부터 제법 큰 양반 가옥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다.
이들 기와집들은 종가일수록 높고 넓은 산등성이 터에 양반들의 법도에 따라
집을 배열하고 있으며 오랜 역사를 지닌 큰 집들을 잘 보존하고 있다.
집들의 기본구조는 대개 경상도 지방에서 흔히 나타나는 ‘ㅁ’자형이거나
튼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간혹 대문 앞에 ‘一’자형 행랑채를 둔 예도 있다.
또한, 혼합배치 양식으로 ‘ㄱ’자형이나 ‘一’자형도 있지만,
대체로 집의 배치나 구성은 영남지방 가옥의 일반적인 특색을 따르고 있다.
여기에 산과 계곡을 따라 펼쳐진 경관, 오랜 전통을 간직한 저택들,
양반 계층을 대표하는 많은 자료들을 보유하고 유교사상 및
생활관습들이 보존되어 이어져 내려오고 있 때문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 마을로 평가받고 있다.
전통마을 방문에서는 다리품을 팔아야 제멋을 느낄 수 있다.
버스나 자동차를 타고 들어오면 지나쳐버리기 쉬운 광경이나
장면들이 걸어서 들어오면 확연하고 자세히 보이는 경우가 많다.
양동마을의 간이역인 양자역만 해도 그렇다.
지금은 새 도로가 나 있어 양자역이 잘 보이지 않지만
얼마 전만 해도 작은 간이역 주변에는 봄이면 철쭉, 여름이면 무궁화,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어우러져 시골역의 정겨움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큰 도로에서 10여분 걸어서 오다 보면 왼쪽으로 안락천이 흐르고 있는데
이곳은 형산강, 안락천, 기계천이 합류되는 지점으로, 풍수에 따르면
합수지역은 부를 상징한다고 하며 이 마을도 이러한 풍수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많은 인재와 부를 지니고 있다
마을 초입에는 지금 유물전시관 건립이 한창이고,
그 옆에는 1913년에 세워진 양동초등학교가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이 마을의 지형이 ‘물(勿)’자 모양의 길지여서
마을 정면에 학교를 세워 ‘혈(血)’자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전한다.
또한 일본인들은 여기서도 철길을 마을 앞으로 지나가도록 가설해
풍수지리에 입각한 우리의 전통 사상과 우리 강산의 기(氣)를 흐리게 하고 있다.
지금은 후손들에 의해 마을 건물들의 방향도 남향에서
동향으로 옮겨지는 등 전통적인 형태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전통마을의 이미지를 손상시킨다는
뜨거운 여론에 밀려 마을 앞 중앙에 있던 교회도 이전하여 학교 뒤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학교 맞은편의 성주산 끝자락 중턱에는 월성손씨 가문의 서당인 안락정(安樂亭)이 있는데,
‘一’자형 건물이며 중앙에 대청마루를 두고 좌우로 온돌방을 두었다.
별도의 담장으로 꾸며져 있는데, 길 아래서는 숲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고 지붕만이 조금 보인다.
안락정으로 오르는 초입까지 오면 마을의 실체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학교를 지나면 구멍가게를 앞에 두고 마을의 전경이 서서히 모습을 나타낸다.
전면으로는 마을 한중간에 가장 크고 멋진 향단(香壇) 건물과 간가정(觀稼亭)이 보이는데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마을의 모습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특히 대부분의 마을이 산자락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산다는 표현에 걸맞게
마을의 초입을 바라보고 구성되어 있는 것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마을 아래 자그마한 여러 동산이 모이고 집들은 이 동산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어서
처음에 이 마을을 찾는 일반인들이 보고 가는 것은 실제 양동마을의 1/4 정도에 불과하다.
양동마을은 항아리처럼 입구는 좁고 뒤로 갈수록 넓어지는 모양이다.
마을은 크게 아홉 개의 골짜기로 되어있고, 그중 일곱 개 골짜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
따라서 마을 구석구석을 대충 보더라도 반나절의 여유는 있어야 한다.
일반적인 평지 마을은 대개 뒷산을 주산으로 형성되지만, 양동마을은
산지형으로 산 능선을 따라 두 가문의 종가와 후손들의 집들이 줄지어 있다.
그래서 한층 자연과 더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마을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려면 안산인 성주산에 올라가 보아야 한다.
그러면 한눈에 전체적인 ‘물(勿)’자 모양의 마을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철이 좋다.
이러한 유적들을 지닌 양동마을은 옛날부터 사람이 살기 적합한 곳이라는 걸 증명해 준다.
입향조 이전에도 많은 조상들이 살다가 사라진 흔적이 너무나 또렷이 남아있는 곳이 양동마을이다.
병자호란, 임진왜란, 6.25 전쟁을 겪으면서도 양동마을이 현재처럼
전통 한옥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양동마을은 볼거리만큼이나 음식도 풍성한 곳이다.
넉넉한 안강 뜰에서의 가을걷이가 끝날 때쯤이 되면
집집마다 전통 쌀엿, 유과, 떡들을 만들고 제사가 많은 종가집에서는 고유의 청주를 만든다.
양동마을의 며느리가 되기 위해서는 청주는 기본으로 담가야 한다고 할 정도로,
제사를 많이 지내야하는 이 마을에서는 지금도 제사를 지낼 때마다 직접 만든 청주를 사용한다고 한다.
양동마을의 청주라고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집집마다 누룩의 양과 찹쌀, 국화, 솔잎 등 재료의 배합에 따라 향과 맛이 모두 다르다.
나는 청주의 참 맛을 보름달이 휘영영청 뜨던 야심한 밤의 양동마을 성주산에서 경험하였다.
향단 사랑채 대청마루에서 종손이 내어준 청주를 마신 적이 있는데,
안주로는 문어와 상어고기와 나물무침 등의 제사음식이 나왔다.
조촐하지만 비할 데 없이 맛있고 정갈한 음식들이었다.
중요민속자료 제75호인 양동(良洞) 상춘헌고택(賞春軒古宅)은
서백당으로 가는 마을길 초입 우측의 근암고택과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가옥이다.
조선 영조 6년(1730)에 동고 이덕록이 지은 집이며,
그의 후손인 이석찬의 호를 따 ‘상춘헌’이라 이름 하였다.
지금도 걸어서 올라가기 어려운 급경사를 올라서면 담장 끝으로
거대한 느티나무의 가지가 사랑마당을 가득 채우고,
맞은편으로는 향나무가 가파른 언덕을 따라 바닥으로 기어오르는 모양인데,
사람이 오르기 힘들 듯, 향나무도 최선을 다해서 사는 모습처럼
나무둥치에 비하여 잎과 가지가 매우 열악하다.
이 두 나무가 이 집의 바깥대문을 대신하고 있다.
* 양동마을의 문화재
국보 1점 - 통감속편 (通鑑續編, 283호)
보물 4점 - 무첨당 (無添當, 411호), 향단(香壇, 412호), 관가정 (觀稼亭, 442호),
손소영정(孫昭影幀, 1216호)
중요민속자료 12점 - 서백당 (書百當, 23호), 낙선당 (樂善當, 73호), 사호당 (沙湖當, 74호),
상춘헌 (賞春軒, 75호), 근암고택 (謹庵古宅, 76호), 두곡고택 (杜谷古宅, 77호),
수졸당 (守拙當, 78호), 이향정 (二香亭, 79호), 수운정 (水雲亭, 80호), 심수정 (心水亭, 81호),
안락정 (安樂亭, 82호), 강학당 (講學堂, 83호)
경상북도 지정문화재 7점
유형문화재 - 적개공신논상록권 (敵愾功臣論賞錄券, 13호)
손소선생분재기 (孫昭先生分財記, 14호)
기념물 - 양동의 향나무 (8호)
민속자료 - 대성헌 (對聖軒, 34호)
문화재자료 - 손종로정충비각 (孫宗老旌忠碑閣, 261호)
향토문화재 - 경산서당 (景山書堂), 두곡영당 (杜谷影堂)
하절기(4~10월) 09:00~19:00까지
동절기(11~3월) 09:00~18:00까지
※ 지정된 관람시간은 없지만, 이외의 시간은
마을 주민의 생활보호를 위해서 관람시 제약이 따를 수 있음
문의및안내 054-762-6263 (매표소)
054-779-6123 (경주시 문화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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